"영어 서툴러도 1세대 이민자 더 많이 배심원 앉혀야"

<소배심에 참여한 12명의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소배심에 참여한 12명의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한인 박병진 조지아 북부 연방검찰청 검사장의 말이다. 

박 검사장은 전국여성판사협회(NAWJ) 애틀랜타 모임에서 한 기조연설에서 “미국에 이민 온 1세대 귀화 이민자들을 더 많은 배심원단으로 앉혀 달라”고 부탁했다고 애틀란타 조선일보가 지난 16일 보도했다. 박 검사장은 “비록 그들이 영어를 제 2언어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검사장은 연방 검사로 재직했을 당시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했다. 당시 배심원단 명단에서 ‘김 여사(Ms. Kim)’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김 씨가 문화적인 접촉점을 지닌 성숙하고 효율적인 배심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배심원으로 계속 있게 해야 한다고 속으로 결심했다.

그러나 판사가 곧 “배심원들 중에서 계속 배심원으로 앉아있을 수 없는 사유를 가진 분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을 때 김 씨가 손을 들자 박 검사장은 크게 실망했다. 

김 씨는 판사에게 “배심원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제가 영어를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사유를 밝혔다. 그러자 곧바로 포효하는 치타처럼 피고 변호인 측에서는 “그녀를 배심원 명단에서 제거해달라”며 판사에게 요청했다.

박 검사장은 김 씨가 배심원단에서 사라지면 이번 재판은 그만큼 불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판사에게 그녀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고 허락을 받았다. 

그 결과 김씨는 백인 남편하고 살고 있고 남편과 함께 일식 레스토랑을 소유, 운영하고 있으며 본인은 식당의 매니저로서 근무하며 때로 서버로 고객들을 응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에 28년간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배심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박 검사장은 판사에게 “판사님, 그녀는 저보다 더 오래 미국에 있었네요.”라는 재치 있는 말로 판사의 마음을 움직여 판사는 김씨의 배심원 거절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석에서 김씨가 나갈 때 그녀는 검사 테이블에서 멈춰서 박 검사장에게 “검사님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지나갔다. 


배심원 제도란?

18세 이상의 미국시민으로 영어 구사능력이 있고 1년 이상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의무가 ‘배심원’이다. 

배심원은 법조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과정에 참여하여 범죄의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사법제도다. 형사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행위가 유죄인가 여부를 판사가 아닌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회의에서 결정하게 된다. 

배심원 제도는 시민들이 법의 심판을 내리고 법의 집행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표와 함께 일반 시민들이 직접 정치 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대표적 민주주의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배심원으로 선발되면 판결에 대한 외부 회유와 압력을 피하기 위해 격리된 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런 수고의 대가로 배심원 의무를 다한 사람이 받는 돈은 하루 40달러.

배심원을 못한다는 정당한 사유를 서면으로 제출하면 법원의 재량하에 배심원 활동이 연기되긴 하지만 바쁜 일상생활 가운데 배심원 의무를 위해 며칠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부담이다. 

배심원들은 유권자 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을 기준으로 무작위로 선발된다. 인종, 성, 출신국, 나이, 정치 성향 등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법원에 온 모든 사람들이 배심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배심제도는 대배심(Grand Jury)과 소배심(Petty Jury)로 구분된다. 대배심은 대략 20여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된 경우이고 소배심은 12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된다. 이 만큼의 숫자만 배심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판사, 원고 및 피고측 변호사들은 법원에 온 잠재적 배심원들에게 아래의 질문을 하며 최종 배심원을 선정한다. 

이 재판에 연루된 사람을 아는지, 이 재판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지, 이 재판에 관련된 사람이나 이슈에 대한 강력한 편견을 갖고 있는지 등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배심원을 뽑는다. 

배심원에 뽑힌 사람은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아래의 지침 사항을 받는다. 

첫째, 재판에 관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을 것. 즉 증인의 말을 다 들어보기 전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둘째, 모든 결정은 증거에 의하여 내려야 하며, 개인적 판단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 셋째,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컴퓨터나 또는 책자에서 찾아보아서는 안된다. 

넷째, 재판이 끝날 때까지 사건에 관하여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째, 재판 중에 메모를 해도 좋지만 남의 것을 보거나 비교해서는 안된다. 여섯째, 재판이 시작되기 전 배심원석에 나올 때는 배심원실에서 모여 나오라는 연락을 받으면 함깨 나와야 한다. 

일곱째, 피고나 원고측과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법정안 음식이나 전화사용을 금하며 전화기를 꺼놓을 것. 아홉째, 모든 질문이나 건의사항은 배심원 서기를 통하여 할 것. 열 번째, 배심원 반장을 뽑아, 일을 진행하도록 할 것.

배심원들은 이런 지침 하에서 사건을 분석하고 파헤치며 증거로 나온 여러 자료들을 보며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가름한다. 모든 의견은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므로 누구 하나라도 의견에 반문을 던지면 배심원끼리 다시 회의를 하고 사건을 파헤쳐야 한다.  

이런 까닭에 피고와 원고 측 변호사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증거와 자료들을 철저히 제공해야 한다. 배심원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라 분위기에 휩쓸려 평결하는 경우가 있어 배심원 제도에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예가 1994년 유명한 OJ 심슨 사건이다. 유명한 흑인 풋볼선수였던 OJ 심슨은 당시 자신의 백인 아내와 백인 내연남을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모든 증거는 OJ 심슨에게 불리했다.

그가 잡힐 당시 조용히 잡힌 것도 아니었다. OJ 심슨은 차를 타고 사건현장에서 도망쳤고 경찰이 이를 추격해 잡았다. 이 추격전은 방송국 카메라에 잡혀 OJ 심슨 추격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생방송되었다. 

OJ 심슨은 재판 중 자신의 죄를 부인하면서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죄인으로 몰리고 있다고 항변했다. OJ심슨의 소행이라는 여러 물증이 나왔지만 그는 결국 무죄평결을 받았다. 배심원 12명 중 9명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었다. 

이 평결을 계기로 배심원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수정헌법 5조를 근거로 정부의 기소재량권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 국민이 기소하는 철학에 기인한 배심원 제도는 미국의 확고부동한 사법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미변호사협회(ABA)가 2005년에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3명은 배심원 봉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전미변호사협회가 미 성인 1029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75%가 배심원 제도는 여전히 필요하며 기꺼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가하겠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60%는 배심원이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케이아메리칸 포스트

2017-10-25 09:59:29


http://kamerican.com/GNC/new/secondary_contents.php?article_no=6&no=3272